얼마 전에 라브리에 찾아온 한 학생은 종교다원주의에 심하게 노출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법당에도 들랑거리고 도교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를 마치 ‘자동차 보험’처럼 ‘영혼보험’을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될 수 있으면 여러 개의 종교를 믿어두는 것이 내세에 대한 확실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현대인들이 너도 나도 다원주의의 독주에 취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다원주의’의 술통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오후에는 법당에도 기웃거리고 조상 제사에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향교에서 제를 올리던 사람들이 오후에는 성찬식에도 참석하고, 아침에는 요가 수련을 정진하던 사람들이 오후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갑니다.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나 석학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앞 다투어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 2년 전쯤에,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로 알려진 달라이라마와 특별 면담을 가진 한국인이 있었습니다. 철학자이며 한의사이기도 하고, 현재는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석학 도올 김용옥 박사였습니다. 그 두 사람이 만나서 의기투합한 것은 “기독교가 종교 간의 대화에 가장 비협조적인 종교다.”고 한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기독교와 대화하기 힘든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문제는 신(神)에 대한 해석입니다. 불교처럼 신(神)을 추상적인 진리체계로 말하면 대화가 쉬워지는데 기독교는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로 주장하기 때문에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으로 건너가 버립니다.” 김용옥은 기독교의 역사성이 불편하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으며, 하물며 불교에서도 구원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인류의 모든 고전을 탐색하고, 모든 종교의 성전을 이해하려는 뜻은, 바로 경전의 진정한 이해를 통하여 인간이 경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신념에 있는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종교 간의 대화를 하려면 신의 인격성이나 역사성을 논하기보다는 진리체계나 영성훈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까지 나누었습니다. “불교는 창조주도 구세주도 초월자도 없습니다. 무신론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신이 없어도 인간에게 무한한 영성을 줍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단지 영성의 개발이나 제고를 위하여 불교를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불도(佛徒)들도 자신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고도 기독교의 영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는 겉으로는 “자기 종교의 고유한 신앙을 지키면서도 서로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어디에도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가 있다고 말하면 배타적이라고 몰아붙입니다.


둘째, 구원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종교마다 구원에 이르는 각기 다른 길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구원의 유일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기독교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셋째, 종교는 단지 과학이거나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 즉 심리학이며, 기독교는 ‘서양 철학의 산물’ 즉 그리스 신화와 같은 것이며 예수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 지식인들 중에 종교의 배타성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뜻에서 주장하는 단원적 다원주의(monistic pluralism)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는 달라도 결국 신은 같은 것이라고 하는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하나뿐이다.’는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다원주의자는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개인성, 다원성을 자랑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이 주장하는 다원적 다원주의(pluralistic pluralism)가 번창하고 있는데, 종교마다 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산에 오르는 길도 여러 가지이고 정상도 여러 가지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앞의 두 입장과는 다르게 길도 하나이고 정상도 하나뿐이라고 하는 절대주의, 즉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믿습니까?


그러면 절대주의를 믿으면서도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든 사랑으로 양보하고 넓은 마음으로 대화하고 관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안별로 정책 연합도 하고 사회 활동도 같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를 양보하거나 타협하면서까지 타 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거나 연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바울사도가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진리를 지키되 사랑으로 지켜나가는 지혜, 즉 바른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은 다원주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