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미세먼지 세가지 딜레마…중국·에너지전환·경유세

전국이 초미세먼지 공습에 숨막힌 나날을 보내고 있다. 6일까지 사상 첫 엿새 연속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데다 중국발 스모그까지 추가돼 앞을 볼 수 없는 형국이다. 정부 당국은 각 지자체와 함께 비상저감조치를 강화하는 등 대책회의에 분주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미세먼지 3대 딜레마'가 있다.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원인 중 50~80% 영향을 끼치는 '중국요인', 문재인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탈원전 드라이브', 마지막으로 도심 미세먼지 주범으로 꼽히는 경유차를 줄이기 위한 '경유세 조정' 등이다. 미세먼지를 잡기위해 조치해야 할 문제임을 알면서도 이행에 나서지 못하는 3대 딜레마를 살펴본다.

[이슈분석]미세먼지 세가지 딜레마…중국·에너지전환·경유세

◇최대 80%가 중국탓…정부, 감축 요구 못하고 속앓이

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미세먼지 관측 이후 지역별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올해 1월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최대 82%가 국외 유입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중국 주요 도시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했던 만큼, 사실상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 영향이 컸다.

환경과학원이 대기질 모델 기법을 이용해 국내외 영향을 분석한 결과, 1월 사례는 국외 영향은 전국 기준 69~82%로 평균 75% 수준으로 나타났다. 1월 미세먼지 원인은 중국의 영향이 컸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고농도 미세먼지 공습 사태도 중국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 동부에선 며칠 전부터 170㎍/㎥가 넘는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발생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대기정체로 최악의 미세먼지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4일 중국발 미세먼지가 추가 유입됐다. 이에 따라 5일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고됐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서울지역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44㎍/㎥로, 지난 1월 14일 기록했던 최고기록 129㎍/㎥을 상회했다. 환경과학원은 적어도 6일까지 고농도 미세먼지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환경부와 외교부는 한반도 미세먼지 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중국 미세먼지 농도에 대해 '중국도 민감해하고 열심히 감축하고 있다'는 이유를 대며 직접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중 미세먼지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1·2월 서울지역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는 각각 38㎍/㎥, 35㎍/㎥로 조사됐다. 지난해 서울지역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1월 32㎍/㎥, 2월 30㎍/㎥였던 것과 비교하면 5㎍/㎥가량 높아졌다.

국민은 중국발 미세먼지에 입을 다문 정부를 향한 불만을 담아 청와대에 매년 청원하고 있다. 지난해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대한 항의'에 27만8000여명이 동의해 청와대 답변을 들었다. 답변은 '중국과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얘기였다.

올해 다시 '미세먼지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합니다'가 시작된 지 열흘만에 3만5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와대는 청원 동의자가 20만명을 넘어서면 공식적으로 답변한다. 이번에는 청와대가 지난해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전 가동 줄인 에너지전환…미세먼지 저감 정책과 엇박자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과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전 가동률을 줄이면서 미세먼지 배출을 막겠다는 것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전문가는 “정부가 문제를 만들어서, 풀고 있다”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정부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로 △2.5톤 이상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석탄화력발전소 등 가동률 조정 △공사장 조업시간 단축 △노후 석탄 조기 폐쇄 등을 시행키로 했다. 이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세먼지 비상조감조치가 국민이 체감할만한 수준에 못 미친다는 주장이다. 국민은 하루에도 2~3번 이상 미세먼지 관련 재난 문자를 받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다.

전문가는 원전 가동률을 줄이면 석탄·LNG 발전을 늘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탈원전으로 미세먼지 배출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에너지전환 정책과 미세먼지 저감조치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원전 감축 정책과 미세먼지 감축 정책 연결고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 미세먼지 배출량 확대를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LNG는 천연가스라고 하지만 분명한 화석 연료”라며 “결국 정부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늘리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저감조치로 미세먼지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엇박자'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미세먼지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탈원전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현재보다 미세먼지 배출 우려를 덜었을 것이고, 국민 건강 악화와 생활 불편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심 미세먼지 감축 위해 경유세 인상 필요…실행은 어려워

환경부에 따르면, 경유차 미세먼지 비중은 11%로 공장매연 등에 이어 4번째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지역만 놓고보면 경유자동차 배출물이 23%로 가장 큰 미세먼지 배출원이다. 따라서 수도권 미세먼지 대책 핵심은 경유차 감축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운행 경유차를 최대한 줄이고 추가 출고되는 차량숫자가 줄도록 정책을 세워 시행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뛰어난 연비와 상대적으로 싼 세금정책이 경유차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휘발유에 매기는 유류세를 100으로 볼 때 경유에 붙는 세금은 85로 OECD평균 90보다 경유세가 적어 경유차 선호의 원인이 됐다. 도심 미세먼지 감축 해법으로 휘발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경유세를 인상하는 것이 꼽히는 이유다.

미세먼지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경유세 인상을 조속히 추진하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 가로막혀 로드맵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2월에 발표하겠다던 경유차 감축 로드맵은 3월이 지나도록 무소식이다. 경유차 소유자 조세저항 때문에 경유세 인상방안은 정부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재정특위)는 경유세를 올리는 방안을 담은 검토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유세를 올리는 등 방향으로 휘발유·경유 간 가격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권고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경유 트럭을 이용하는 생계형 운전자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형차를 포함한 모든 경유차를 미세먼지 주요 발생원으로 규정하고 소유자에게 부담 지우는 것도 무리가 있다. 자동차가 이미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세금을 올린다고 경유차 운행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 자칫 서민 생활비 지출을 늘리면서 정부가 세수만 챙긴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유업계는 확실한 원인 조사나 근거조차 없이 미세먼지의 근원으로 경유차만 지목하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미세먼지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경유차만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