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논란은 복잡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넥슨 성우 메갈리안 티셔츠 해고논란 등 사안이 뜨거운 만큼 관심은 가지만 ‘누군가를 차별할 의도도 없고, 합리적인 의견을 취하고 싶은 이들’도 쉽게 사안을 판단하거나 입장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단 ‘여성혐오’ 논란이 공권력에도 퍼졌던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를 살펴보자. (물론 그 전에도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은 있어왔고, 소라넷 폐쇄 요구 등 대중적 관심 역시 지속돼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 공권력은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됐다.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곧바로 논란이 됐다.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 무시, 배제를 ‘여성혐오’라고 칭한 것에 대한 반감이 터져나왔다. “내가 여성을 왜 혐오하느냐”,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등의 발언은 일부 무지한 대중의 발언이라고 무시하기엔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사회에 대해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선뜻 이해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혐오’라는 말은 영어 미소지니(misogyny)의 번역에서 온 것이다. 부정접두사 ‘mis~’에 여성을 가리키는 ‘gyn’가 만났다.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여성을 싫어하는 일본의 미소지니(女ぎらいニッポンのミソジニ-)를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로 번역하면서 여성혐오라는 말은 대중에 널리 퍼졌다.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은행나무 펴냄

그런데 이 책 제목을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로 번역하면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여성에 대한 만성적인 임금차별, 공공장소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묻지마살인’으로 불리는 페미사이드(femicide)까지 모두 ‘혐오’라는 단어로 불리게 됐다. 혐오는 보통 극단적인 감정이 담겨 공격적인 언어나 행동으로 표출되는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맥락에서 여성을 ‘혐오’한 적 없는 남성들은 ‘내가 언제 여성을 혐오했느냐’는 반문을 하게 된다. 혐오(嫌惡)의 ‘오(惡)’는 ‘악’으로도 읽힌다. 용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에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 잠재적 악인이 되는 것을 방어하려는 태도가 즉각적으로 나온다. (물론 이런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또한 혐오는 보통 강자가 약자에게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약자가 강자에게 갖는 감정은 혐오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따라서 여성혐오, 동성애혐오(호모포비아), 외국인혐오(제노포비아) 등의 말은 논리적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책 제목처럼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고 해버리면 ‘혐오’를 마치 ‘동등한 주체 간의 대립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처럼 느끼게 만든다. 의도와 무관하게 ‘여성혐오를 혐오’하면서 ‘남성혐오’라는 말은 예정됐다. 여성혐오를 남성이 할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항해 여성들이 남성을 혐오하긴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메갈리아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미러링’이 시작됐고, 메갈리아는 소라넷 폐쇄요구, 강남역 살인사건, 넥슨 성우 계약만료 사건, 나는 메갈리안이다 선언운동 등을 거치며 논란의 중심이 됐다. 남성과 여성, 일베와 메갈리안은 동등한 주체가 아니지만 동등한 주체인 것처럼 돼버렸다.

미소지니를 혐오라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심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소지니를 혐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 관점에서 볼 때 번역 자체가 필요했는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번역의 어려움은 혐오에 대해 연구해온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언급했다. 그는 “hate crime를 증오범죄라고 옮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혐오의 격정적 상태가 물리력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hate speech에 대해서는 ‘감정의 정도’가 낮기 때문에 혐오표현이 더 적절하다”며 “같은 영어단어를 다르게 번역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했다.

미소지니를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쓰는게 낫다는 정희진의 주장은 이렇다.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는 말을 번역하면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는 구의역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애도가 서울시에 대한 혐오가 아니고,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비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남성혐오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메갈리안을 일베와 동급으로, 여성혐오를 남성혐오와 동급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번역과정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정치적인 ‘사건’이다. 요약하면 약자들은 언어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번역과정에서 권력의 의도대로 의미가 왜곡될 수 있고, 이때 더 많은 설명을 요구받는다.


▲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인증한 여성 성우에 대해 네트즌들이 항의를 제기하자 넥슨은 하루만에 여성 성우를 교체한다고 밝혔다. 사진=김자연 성우 트위터

여성·노동 이슈 번역은 더 민감하다

정희진의 지적처럼 “번역은 정치적”이다. 외래어를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은 유독 여성·노동 등 상대적 약자를 다루는 용어에서 많다. ‘노동시장 유연성(Labour market flexibility)’이라는 단어는 회사가 경영상 편리를 위한 ‘쉬운 해고’지만 ‘유연성’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해 위험성을 감춘다.

주로 사회적 약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권리(權利)’라는 말 역시 ‘정당하게 자신의 몫, 최소한의 옳음’ 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는 뉘앙스를 담게 된다. 영어 right에는 옳다는 의미까지 들어가 있지만 ‘리(利)’에는 ‘옳지 않더라도 혹은 옳든 아니든 자신의 것을 챙긴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자궁(子宮)’은 남성아이가 머무는 곳이고 여성의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vagina)’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칼이 머무는 ‘칼집’을 말한다. 남성 혹은 기득권 중심의 문화가 녹아들 필요가 없는 단어들은 번역어가 없거나 번역을 잘 하지 않는다. 유비쿼터스, 엔진, 인터넷, 디지털, 리베이트, 비즈니스 등이 그렇다.

언어를 갖지 못한 자들의 문제는 젠더 문제뿐이 아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정신병원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서로 대화조차 나누기가 어려워 자신들만의 소통을 위해 일부러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논의는 언제나 더 복잡하고, 인내심을 요구한다. 간혹 과격했을 때 더 높은 수준의 정결함과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페미니즘 논의가 확산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다수 시민들이 최근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길 두려워하고 있다.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의도와 무관하게 메갈리안의 ‘미러링’(메갈리안의 정체성은 보통 미러링하는 곳으로 이해된다)과 겹쳐 남성, 여성, 메갈리안, 일베 등을 동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정체성의 정치’를 가져왔다. 특정 정체성(유대인, 흑인, 여성, 호남 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동급으로 취급되거나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우에노 지즈코 책의 번역과 메갈리안이 현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건 아니다. 일베나 소라넷 등에서 여성에게 저질렀던 폭력과 이에 대항한 메갈리안에서 일부 과격한 언사가 나왔던 것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메갈리안이 곧 모두 페미니즘 관점을 가졌다고 볼 수도 없고, 페미니즘 관점이 메갈리안에서만 유통되는 것도 아니다.

메갈리안에서 남성을 동일한 집단으로 보고 ‘혐오’ 표현을 사용하거나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 나오는 것을 이용해 메갈리안을 비판하는 하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남성은 자신을 남성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생각하길 강요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의견을 보여주면서 ‘메갈리안이 그런 곳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은 한계를 지닌다.

남성, 여성, 메갈리안, 일베 등은 단 하나의 의견을 가진 집단이 될 수 없고, 이중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다고 해서 그 집단의 평균적인 의견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페미니즘은 특정 성정체성을 가진 인간을 ‘여성’이라는 집단으로 묶는 것에 대한 거부이지, 여성과 대비되는 남성을 동일한 집단으로 놓자는 관점이 아니다.

‘메갈리안은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페미니즘은 경제학, 물리학과 같이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진 ‘학문’처럼 이해하기 보단 ‘남성중심적 사회를 좀 다르게 보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도 없으며,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처럼 ‘과정’에 집중하는 개념이다. 중요한 건 페미니즘을 말하는 이들의 도덕성이 아니라 이 사회가 얼마나 여성의 목소리를 인내심있게 들어주며 논쟁의 차원을 높이느냐의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