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복’ 못믿고 직접 확인하고…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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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학습효과… 달라진 세태

지난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직후 후행 열차에는 “차내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들이 함부로 내릴 경우 맞은편 선로를 달리는 열차에 치일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상당수 승객은 이 방송을 따르지 않고 직접 문을 열고 선로로 뛰어내렸다. 객차 정전에 따른 공포, 화재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었다가 참변을 당한 ‘세월호 학습효과’가 작용한 결과였다. 열차에서 빠져나온 일부 승객은 “승무원의 방송을 믿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복’을 향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선원과 해경 등의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대응을 지켜보며 제복 입은 이들의 공식적인 말을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참사 현장의 관료들, 수습에 참여한 기관들마저 신뢰를 깎아먹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우리 사회의 제복은 사람들의 믿음을 잃었다.

직장인 박모(27·여)씨는 지난 5일 오후 지하철을 탔다가 “열차 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안전한 차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듣고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안내방송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지하철 탈 때마다 들었던 방송이고 별다른 사고 조짐도 없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엔 저런 방송만 나와도 화들짝 놀라 의심부터 하게 된다”고 말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요즘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며 “‘왜 구조가 늦어지느냐’ ‘경찰도 한통속 아니냐’는 항의전화가 빗발쳐 업무를 못 볼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깊어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체감하고 있다. 불안감이 들 정도다. 이런 불신이 제2의 광우병 촛불집회로 번지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최모(47)씨는 지난 3일 황금연휴를 맞아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인 광주로 향했다. 고속도로에서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버스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자 최씨는 안전띠를 풀고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그는 “늦게 도착해도 좋으니 안전운전을 해 달라”고 운전사에게 당부했다. 동시에 버스가 규정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계기판까지 확인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급격한 감속의 충격에 일부 승객은 부랴부랴 안전띠를 찾기도 했다.

지난 4일 오후 가족과 함께 영화관을 찾은 이모(31)씨는 상영 직전 화재 비상대피로 안내가 스크린에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안내 화면에 나타난 대피로까지 걸어가 눈으로 확인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이씨는 “세월호든 지하철이든 직원들이 제대로 된 지시를 하지 않아 일어난 것 아니냐”며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야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상영관을 찾은 20대 남녀 관객도 “잘 봐두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스크린의 대피로를 유심히 살폈다.

이외에도 곳곳에서 불안 징후가 감지된다. 불이 나면 대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지하에 있는 식당이나 노래방, 주점 등을 피하는 직장인도 많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사고 이후 날이 갈수록 증폭되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안전보장이 국가의 책무임에도 세월호 침몰 후 구조와 원인 규명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전수민 박요진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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