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기대감

안윤호입력 :2007/07/26 09:26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기대감 만들기와 관찰하기

디스커버리 채널의 방송 프로 중에 “I, Videogame”이라는 짧은 연재물이 있었다. 아시모프의 SF 고전인 “I, Robot”을 흉내낸 것 같은 제목으로 비디오 게임의 역사와 종류를 보여주었다. 영화산업보다도 규모가 크고 사람들의 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먹는 컴퓨터 게임을 설명하는 프로다. 컴퓨터게임은 스페이스워(Space War)를 시작으로 본다면 50년이 되어가는 문화이며 아타리(Atari)의 퐁으로부터 보면 35년이 되었다.

대중적인 게임은 탁구와 비슷한 퐁에서 작은 공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퐁은 의성어. 그것은 개인이 TV에 대해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문화 콘텐츠였다고 평한다. 그전까지 비디오 영상은 방송국에서만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퐁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며 만들어내는 콘텐츠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들이 원하던 그 무엇이었다.

퐁을 만들던 아타리의 일을 도와주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얼마 후 애플을 창업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컴퓨터를 만들던 컴퓨터 자작클럽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멤버들이었다.

퍼스널 컴퓨터라는 것들이 나오고 10년 정도가 지나 일상적인 놀이의 요소이지 비즈니스 무대가 되면서 다른 문화상품과 비슷한 면을 갖게 되었다. 광고나 소문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만들어내고 기대를 적당히 실망시키는 흥행의 기술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발표 때마다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었고 아예 발표 예정이던 제품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망도 하고 환호도 하지만 사실은 소비자나 개발자들은 시간과 능력의 제약 속에 쫓기며 산다.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도 ,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도 슈퍼맨은 아니다. 대부분의 제품은 범용하고 일반적인 것이며 새로운 것도 없을 때가 많다. 보통은 새로운 것이 오히려 예외였다. 앞으로 나올 영화에 대한 광고를 보고 기대하며 또 실망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였다.

이런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가끔씩은 근본적인 도약이 일어나고 아이콘으로 남을 만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사람들 역시 가끔씩 새롭게 빠져들 수 있는 문화적인 아이콘을 필요로 한다. 필요로 하다기 보다는 기대한다는 편이 좋겠다. 사람들은 분명히 이런 새로운 다양성이나 문화요소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본능이다.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면 아무도 무엇을 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가끔씩이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사려고 할 것이다.

예전의 애플 II 나 매킨토시 아이팟, 그리고 최근의 아이폰 같은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일종의 느낌을 제공했다(처음의 붐에 비해 아이폰 판매는 예상보다 조금 실망스럽다고도 전한다.). 이런 것은 상품이기 전에 문화상품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애플 II가 다른 퍼스널 컴퓨터보다 뛰어난 것은 정말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하얀색의 플라스틱 케이스 디자인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그 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킨토시 역시 뛰어난 제품이었지만 기술적으로는 제록스 알토의 유전자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나머지 제품들도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원하는 무엇을 충족시켜 줄 것 같은 환상을 제공했다. 환상과 실제는 문화적인 전략에서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실이다. 소문이 도는 것은 사실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렇게 될 수 있다.

때로 이런 상품들에 필요한 등장인물과 분위기는 금방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우들처럼 조심스럽게 이미지 관리가 되어야 하고 결국 상품 그 자체보다는 제품의 이미지나 환상을 파는 것이다. 그래서 잡스와 같은 낯익은 아이돌이 등장한다. 다른 메이커들은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애플은 무의식중에 디자인 아이덴티티라는 개념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아이콘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람들은 작은 교주와도 같다.

그래서 IT 기술에 선행하는 것은 선전술과 심리전일 수 있다. 개념의 싸움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달보다 선전술은 언제나 선행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추측 자체도 사실은 설정일 수 있다. 모든 것이 흔해진 요즘에 어떤 물건들은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명품과 일반적인 제품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비슷한 것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가 전략을 가른다. 어떤 것들은 운이 좋게 명품 같은 것으로 진화하고 어떤 것들은 그냥 흔한 상품이 되고 만다. 그 분수령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하게 보이는 부분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튈 수 있는 행운은 문화의 낙차를 감지하거나 운이 좋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필자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운행이 가능한 차라면 실제 기능의 90%에서 95 % 정도는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차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과 특별한 무엇에 대한 기대는 메이커의 마케팅이 먹히는 부분이다. 내가 차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차에 대해 반년치 정도의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한다.

미래에 대한 선투자 또는 또박

그래서 문화상품을 기획하거나 준비할 때 도박과 같은 요소가 있다. 중요한 판단이 옳은 지 옳지 않은지는 시간이 지나보아야 알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하는데 이런 일들은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업체에서도 배울 수 없다. 운 좋게 고집스러운 회사에 들어가거나 같이 일을 하면서 배우거나 아니면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문화상품이나 아이템은 개인,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시간과 세월의 판돈을 걸고 베팅할 수 있다.

예전에 필자는 개발자들에게 강연할 때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능력개발에 베팅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을 일종의 동기부여(motivation)나 자기평가(self-esteem)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건조한 해석일 것이다. 자존심과 의욕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시간과 노력을 그리고 돈과 미래의 기회에 대한 도박을 감수할 만큼, 자기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로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겠지만 기대가 없으면 일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종의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자기개발을 시작해라. 기대를 걸면서 좋은 예감을 갖고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남들과 달라 보이는 길을 걸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아니면 걸으면서 발견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풀 베팅은 일어나지 않는다(곰곰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머나 IT 개발자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작가들이나 다른 예술가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업그레이드 기간은 평생이 될 수도 있으며 어느 시기의 성취가 평생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잘못되었을 때의 대가는 뼈아프지만 잘 되었을 때의 보상 역시 크다. 대가도 작고 보상도 작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세월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잇다. 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인다면 사소한 것들부터라도 베팅을 해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이었다. 자신에 대해 좋은 예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 자기개발의 합리적인 방법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과감하게 투자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나 일에 대한 투자는 더 힘들지 않을까라는 내용이 필자의 반문이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자기들에게 동조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충실하게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새로운 베팅은 겁나는 일로 간주된다.

문화의 아이콘은 사실 만들어지거나 믿어지는 것이다. 원래부터 추상형이라 실체가 없다. 그냥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아이콘은 일종의 우상이다. 브랜드의 인지도나 개발자의 명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흥행에 가깝다. 오랜 동안 꾸준하게 일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다. 어떤 실체가 없더라고 아이디어와 생각들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쌓이다 보니 실체가 된다. 산속에 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큰 길이 되거나 마을이 되더라는 이야기와 같다.

사람들에게 묘한 미끼를 던져서 유혹하고 사람들의 조용한 열망을 자극하는 것은 신비한 기술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따라하기 본능이 인력의 법칙처럼 에너지를 제공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것인데 이미 사람들은 다른 것에 홀려있기 때문에 관심을 새롭게 만들려면 약간의 새롭게 보이는 미끼와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광고나 다른 매체에서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유혹하려면 방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미끼가 있고 그 안에 낚시 바늘이 있다. 얼마 전 꽤 많이 팔렸던 <유혹의 기술>같은 책이 이런 전략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다. 책은 최근에 <유혹의 기술 2>도 나왔고 다이제스트판도 나왔다. 예상보다는 반응이 좋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조금 지루한 면도 있지만 읽다보면 생각할 것이 예상보다 많을 것이다. 책은 현대사회의 키워드는 ‘유혹’이라는 보들리야르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유혹이나 암시성에 대해 낚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바람은 사회의 변화에 따른 불안감과 함께 항상 변하며 불안을 감추며 숨어있다. 때로는 자신들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럴 때 누군가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잘 빠져든다. 일종의 작은 혹세무민이며 놀이터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읽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낚는 낚시와 같은 것이다. 유혹하거나 홀리는 것은 키워드 하나나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래서 잠시 사람들의 관심을 점령하면 시간과 관심을 얻고 그 다음은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다. 때로는 작은 화두나 점쟁이의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평생 얽어매어 놓기도 한다. 그러니 훨씬 발달된 심리전이나 아이디어 싸움으로 소비자들을 30년을 묶어두는 것도 가능하다.

가장 흔한 형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 적어도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사이트들이 갑자기 동영상이나 UCC 같은 것으로 선회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UCC 전의 큰 주제였던 블로그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전략이다. 알아낼 수 없으면 질문을 계속하여 알아내기도 한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거나 홀리고 싶어 하는 아이템을 지켜보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사람들이 항상 소리 없는 신호를 통해 강하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고 한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한다.

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발견하는 것은 자기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필자는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 캡처된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게임의 캐릭터에 특성을 부여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지켜볼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들이 어떤 룰의 지배를 받는 게임의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 복잡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사실은 간단한 룰들의 상호작용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법들도 사실 조항은 간단하나 적용은 매우 복잡하게 일어난다.

이상한 룰, 집단정신

소비자이며 창조자이기도 한 사람들의 집단에 대한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집단에 대한 본성을 다른 책들이 몇 권 기억에 남는다. 고전인 엘리아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 그리고 『루시퍼 원리』라는 비 정통적인 책이 있다. 하워드 블룸이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역사 원동력에 대한 탐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파스칼 북스에서 번역됐으며 아직도 팔린다). 책의 저자가 루시퍼 원리라고 부르는 것들은 다른 곳에서 차용한 것들로 복잡성 과학과 사회생물학에서 일부분씩을 뽑아 만든 것들이다.

책의 진행은 풍부한 실례들을 분석한 것이다. 「루시퍼 원리」의 저자인 하워드 블룸의 다른 책은 「집단정신의 진화(원제목은 글로벌 브레인(Global Brain)으로 파스칼 북스에서 출판되었다)」라는 책인데 「루시퍼 원리」가 폭력과 증오를 집단이 조각칼처럼 사용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라면, 「집단정신의 진화」는 집단적 지능과 질서가 생기는 과정을 다루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두 권의 책을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주장이 원색적이기도 하지만 예제들을 끄집어내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면 상당한 재능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광기에 빠지게도 하도 통제력에 대한 집착과 환상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무의식을 움직이는 몇 개의 구성 원리는 우리가 통제받는 사회의 메커니즘과 가끔씩 새로운 화두를 들고 나오는 다양성 생성자 그리고 내부 심판관 같은 등장인물의 롤을 부여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분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나 아이콘에 대한 재정의라는 것이 집단 속에서의 상호작용으로 계속 바뀌고 재정의 되는 것이라면 아예 집단을 먼저 분석하고 프로그램해 보는 것이 IT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효과가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필자에게는 가끔 떠오르곤 한다. 이런 일은 정치가들이 하고 있지만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이 생각마저 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다른 접근법으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도 하고 있다(사람을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이다.).

지면상 집단을 프로그래밍하는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다음 컬럼에 생각해보고자 한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