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현직 기자에서 청와대 신임 대변인으로 자리를 갈아탄 민경욱 신임 대변인이 KBS 내부 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KBS 윤리위원회가 지난 2004년 만든 「KBS 윤리강령」가운데 1조3항은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관련 취재 및 제작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 KBS 윤리강령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2011년 1월부터 2013년 10월 최근까지 약 3년간 KBS 메인뉴스 <뉴스9>를 진행했다. 특히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되기 하루 전인 4일까지도 문화부장 자리에서 메인뉴스 <뉴스9>에 출연, ‘데스크분석’ 코너를 진행했다. 이 코너는 사회 현안,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코너이다.

문화부장을 맡고 있던 인물의 갑작스러운 청와대 행에 KBS 내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경욱 대변인의 청와대 행과 관련해 최근 KBS 내부에 소문이 돌긴 했으나, 대다수 구성원들은 청와대 공식 발표 이후 보도를 통해 관련 사실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변인은 청와대의 공식 발표가 있기 10분 전, 같은 부서인 문화부 소속 구성원들에게 관련 사실을 문자를 통해 전했으며 공식 발표 5분 전 정치부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KBS 내부에서는 ‘윤리강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민경욱 신임 대변인의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어제까지 뉴스에 모습을 드러냈던 기자가 하루 만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갈아탔다는 점에서 기자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다.

KBS 기자 “말도 안 되는 일” 비판

KBS 한 기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KBS가 공영방송인지 국영방송인지 의문을 갖고 있는 후배들에게 (KBS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뉴스9> 2월3일치 <휴가비 지원·봄가을 휴업…관광 활성화> 보도 핵심에 민경욱 대변인이 있었다는 점도 논란이다. 특히, 청와대로부터 대변인 자리를 제안 받은 뒤에도 문화부장이라는 직함을 지닌 채 정부 정책을 사실상 홍보하는 리포트를 제작, 지휘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시 KBS는 정부가 휴가비까지 주면서 국내 관광 활성화에 나서기로 했다는 사실을 메인뉴스 첫 소식으로 주요하게 보도하면서도 이 같은 정부 정책이 갖고 있는 문제점 등 부정적인 단면을 전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코멘트가 들어가는 등 정부 정책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민 대변인은 5일 오후 청와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 기일(1월30일)인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대변인직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기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한 것인지, 기자로서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제안을 받은 상태에서 리포트를 했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자도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본다. 회사가 ‘영향력 1위’ 언론사라고 말하는데 그런 영향력 1위 언론사의 앵커가 현직 부장을 하다가 곧바로 대통령의 입이 된다는 게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라며 “(기자로서)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청와대 대변인 임명 하루 전인 2월4일치 <뉴스9>에 모습을 드러낸 민경욱 대변인 (관련 화면 캡처)

민경욱 대변인의 행보에 대해 언론학자도 강하게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미디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현직에서 데스크분석까지 했던 사람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 것은 언론윤리 측면에서 엄청나게 어긋난다”며 “청와대와 정치권도 문제지만 정치 지향적인 언론인들, ‘정치권이 부르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언론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정치 지향적 자세를 갖고 근무하면 당연히 친정부성향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언론은 그래서 정치 권력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둬야한다”면서 “언론인이 권력에 대한 감시, 견제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빌미를 정부가 주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차출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면 (그런 기자들은) 해바라기처럼 충성스럽게 정치 권력에 유리한 보도로 의도를 드러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언론인도 퇴직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정치권에 갈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민경욱 대변인 임명과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와 KBS 기자협회(조일수)는 곧 성명을 내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KBS 27기 기자들은 이날 오후 별도로 성명을 내어 문제를 제기하며 대변인 임명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민경욱 기자는 1991년 KBS 공채 18기로 입사해 보도국 정치부, 기동취재부, 사회부를 거쳤다. 2004년 7월부터 3년간 미국 워싱턴 특파원으로 지냈으며, 2007년에는 보도국 정치부 데스크를 거쳐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 <생방송 심야토론> 등을 진행했다. 그는 또 지난 2011년 1월 1일부터 2013년 10월 18일까지 KBS 메인뉴스인 <뉴스9>를 3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KBS는 ‘윤리강령 위반’ 보도가 나간 이후 “윤리강령 1조 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치활동’이란 국회의원 등 선출직이나 당적을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므로, ‘정치 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미디어스>에 밝혔다.

민경욱, 위키리크스 기밀 문서에 등장하기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대사관 측에 이명박 당시 후보 등과 관련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ww.wikileaks.ch)가 지난 2011년 8월 말 공개한 미 국무부 기밀 문서에는 민경욱 당시 KBS 뉴스편집부 기자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미 대사관 측에 이명박 당시 후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12월 17일 작성된 'KBS 기자: 실용적이고 수줍은 이명박'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따르면, 민경욱 KBS 기자는 이명박 다큐멘터리의 12월 20일 방송을 앞두고 제작과정에서 알게 된 이명박 관련 정보를 미국 측에 상세하게 건넸다. 구체적으로, 이명박 당시 후보와 관련한 정보는 △포항 출신 △현대 △실용주의 △인적 관리 △스캔들 △핵심 비전의 부족 △종교 등 7가지 주제로 나뉘어 전달됐다.

또, 문서에는 “민 기자가 이명박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취재차 찾았던 이명박의 고향인) 포항을 떠났다” “민 기자는 취재 도중 이명박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당했다. 때문에 KBS의 이명박 다큐멘터리는 이명박에 대해 꽤 우호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등 민 기자가 이명박 당시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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