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국회부터 세종시로 가라

중앙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11-25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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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정재] 과거 우리 국회는 유랑극단처럼 떠돌았다. 1948년 중앙청에서 첫 국회를 연 뒤 12번을 옮겼다. 국회의사당이 지금 자리에 들어선 건 75년이다. 건설 때부터 말도 많았다. 한시가 급하다며 두 달 만에 설계를 마쳤다. 좀 있어 보여야 한다는 의원님들 주문에 원안에 없던 원형 돔을 앉히느라 그나마 건물 균형도 무너졌다. 국회의원은 정문으로, 일반인은 250m 떨어진 후문으로 드나들게 했다. 그뿐이랴. 국회 주변에는 6층 넘는 건물을 아예 못 짓게 했다. 여의도가 지금처럼 동고서저(東高西低), 국회가 있는 서쪽은 납작하고 반대쪽은 마천루로 빽빽한 기형적 모습이 된 이유다. 이런 국회를 보는 주민들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대부분 딴 데로 옮기길 바란다. 국회는 여의도 주거지(2.9㎢, 약 80만 평)의 8분의 1을 차지한다. 서쪽을 꽉 틀어막고 있으니 개발축이 뻗기 어렵다. 게다가 걸핏하면 데모대가 몰려 시끄럽다. 의원님들이라고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짐짓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왔다. 세종시다. 국회만 세종시로 옮기면 여의도 주민의 숙원뿐 아니라 온갖 논란거리들이 한꺼번에 풀린다. 우선 행정 효율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대놓고 말은 않지만 청와대가 주장하는 행정 비효율의 핵심은 국회다. 9부2처2청이 옮기면 남은 정부 부처와의 협의에 시간이 너무 걸려 문제라지만 국회보단 덜하다. 부처 간 협의는 서로 사정을 봐주면 된다. 장관이 어려우면 차관이, 차관이 힘들면 1급이 대신 가면 된다. 국회는 다르다. 꼭 장관이 얼굴을 보여야 한다. 얼마 전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취임식과 겹쳐 국회 출석을 미루려다 곤욕을 치렀다. 좀 봐주면 될 일이지만 ‘장관 군기잡기’가 전공인 의원님들이 넘어갈 리 없었다. 이래서 생기는 비효율도 국회가 옮기면 시빗거리가 못 된다. 그때 가서 진짜 힘들면 남아 있던 부처들은 가지 말라 해도 국회를 쫓아 세종시로 옮겨갈 것이다. 반면 “고속철이 완공되면 시간 낭비가 별로 없다”는 야당 주장이 맞다면 아무도 세종시로 가지 않을 것이다. 야당과 친박 입장에선 청와대 주장이 맞는지 확인할 기회도 생기는 셈이다. 옮기기도 쉽다. 국회에서 결정만 하면 된다. 야당과 친박이 뭉치면 국회 통과는 문제도 아니다. 이미 나랏돈으로 터도 다 닦아놨다. 명분도 있다. 세종시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가 됐다. 처음엔 충청·정치권 문제였지만 각종 특혜설이 불거지면서 이젠 온 나라가 휘말렸다. 국회가 나서도 누가 일부 지역 문제라고 비난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결자해지요, 솔선수범도 된다. 시작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지만, 법을 만든 것은 국회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내심 국회와 사법부도 같이 가길 바랐지만 중간에 포기했다”며 “행정부 옮기는 것보다 야당이 더 반발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행정부가 가면 국회도 따라갈 것이라고 보고 국회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든 지금의 야당·친박이든 누구 하나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자고 말하는 이가 없다. 효과도 크다.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만들려면 현재 법만 갖고는 잘 안 된다. 기업이든 학교든 쉽게 짓고 이득이 되도록 법을 고쳐줘야 할 게 꽤 있다. 국회가 세종시에 있으면 이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부수입도 생긴다. 여의도 국회 땅을 상업용지로 바꿔 팔면 약 5조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돈을 세종시에 보태면 꿩 먹고 알 먹고다. 빈 땅엔 초고층빌딩을 지어 세계의 금융회사들을 유치하면 좋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 인프라가 몰려 있는 곳이 여의도다. 잘만 하면 월스트리트 뺨치는 금융 허브를 만들 수 있다. 괜히 엉뚱한 데 땅 파다 나랏돈만 날리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충청주민의 반발이다. “청정지구를 만들어준다더니 속았다”며 거부할 수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 ▶이정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jyeehhk/ [J-Hot] ▶ 대기업 사장이 밝히는 '몸값 높이는 비법' ▶ 박희태 "'대통령 명 어기고 장래 보장될까?' 말에 충격" ▶ WP '동양의 신비' 극찬한 한국 술, 1억병 팔려 '대박' ▶ "스님이 300만원짜리 가사입는게 말이 되냐" ▶ MB-노무현 '대통령 명함' 차이점 비교해보니 ▶ 日 대표작가 "천황폐하 만세" 외치며 할복 자살 ▶ "조두순 200년형 내려진다고 해서 나영이가…" [☞ 중앙일보 구독신청] [☞ 중앙일보 기사 구매] [☞ 모바일 Joins]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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